영혼을 거두는 자 – 핏빛 수렁의 음악

영혼을 거두는 자 – 핏빛 수렁의 음악

서부원정지 근방에 자리잡은 핏빛 수렁은 악취나는 지류를 타기 위해 지나가는 그냥 늪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부자연스러운 양상을 띠는 불쾌한 수렁에다가, 성역이나 영원한 분쟁에서 거의 비중도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곳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수렁의 진창 아래엔 장대한 역사를 지닌 폐허가 은밀하게 숨어 있기 때문이죠. 그 폐허는 슬픔과 타락, 그리고 기억과 마법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최근 습지는… 거대하고 사악한 악의 은신처가 되었습니다.


지난 게시물에서는 핏빛 수렁의 세계관과 외형을 살펴보았는데, 아직 중요한 지역 설계 요소가 하나 더 남았습니다. 바로 음악이죠. 이번 게시물에서는 으스스한 핏빛 수렁을 탐험하며 듣게 될 음악의 일부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영혼을 거두는 자의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설명해드리기 위해, 음악 감독 데릭 듀크(Derek Duke)와 함께 간단한 질문과 답변 시간을 가져 보았습니다.

Q. 일단 시작하기 전에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녹음하기 전에 촛불을 켜거나, 주문을 외거나, 불가사의한 의식 같은 걸 하면서 분위기를 잡나요? 

데릭: 제가 디아블로 III를 할 때 촛불을 켰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분위기 면에서는, 일단 조명을 어둡게 하는 편입니다.

Q.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작곡하기 전에 먼저 하는 일이나 행위 같은 게 있나요?

데릭: 초기 구상 단계에서는 분위기를 잡거나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좋습니다. 제 자신을 완전히 디아블로에 녹아들게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게임의 초기 빌드를 플레이하거나 설정 원화도 보고, 블리자드 내에서만 볼 수 있는 모든 배경 설정과 이야기를 탐독합니다.
이 밖에 공책에 낙서를 하거나, 악보를 그린다든가, 전화기에 대고 노래를 한다든가,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작품으로 이어집니다. 음악 작업을 할 때에는 감정과 분위기, 이야기 같은 것들에 “얽매이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잠재 의식에 녹아들게 한 다음 음악에 반영되도록 합니다.

Q. 핏빛 수렁의 음악을 만들 때는 어디서부터 시작했나요? 이 지역 음악에 큰 영향을 끼치거나 영감을 준 것이 뭐였죠?

데릭: 핏빛 수렁은 예술적으로나 디자인 면에서나 많은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음악 역시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우선 늪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길고 지직거리는 전자 기타 음악을 녹음했습니다. 안 좋았죠. 밴조(Banjo)도 써봤는데.. 역시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로 담아내는 건 절대 못할 것 같더군요.

결국 핏빛 수렁의 잊혀진 역사,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감정을 관현악으로 표현한 것이 가장 잘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만날 장대한 경험을 누설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너무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미리 듣기로 선보이는 음악은 이 지역의 느낌을 정말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Q. 핏빛 수렁과 코르부스 폐허 음악만의 독특한 점은 뭘까요? 이 지역만 가지고 있는 주제나 악기가 있나요?

데릭: 핏빛 수렁에 가장 처음 도착하시면 신성한 진언를 읊조리는 여성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영혼을 거두는 자의 결말로 나아가며, 이 목소리로부터 파생되는 더 많은 진언과 노래를 듣게 됩니다. (사실, 게임 음악의 상당 부분은 이 진언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습니다.)

핏빛 수렁은 오프닝 영상에 나왔던 장소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 혹은 “운명의 사슬”이 나타나는 최초의 장소입니다. 코르부스 폐허에 내려가시면 조금 무작위처럼 느껴지는 음악을 듣게 됩니다. 이들은 전혀 다른 관현악 연주가 조합되어 으스스한 느낌을 줍니다.

Q. 성역은 매우 다채로운 세계입니다. 특정 지역의 음악을 만들 때 디아블로 전체의 음악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그 지역만의 독특한 느낌을 어떻게 불어넣고 있나요?

데릭: 이 작업은 확실히 어려운 일이고, 영혼을 거두는 자에서도 잘 표현했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데요.

최근 음악을 만들며 디아블로 시리즈와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시도한 것은, 모든 음악을 한 사람을 통해 일관된 과정으로 제작하는 것입니다. 디아블로 시리즈 본래의 음악은 한 사람이 작곡한 것이고, 블리자드의 다른 게임에서는 한 게임에 다양한 성격의 작곡가로부터 도움을 받은 한편, 디아블로는(특히 영혼을 거두는 자는) 한 가지 소리처럼 들리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음악 대부분을 제가 작곡하는 한편, 러셀 브로워(Russell Brower), 제이슨 헤이즈(Jason Hayes), 조셉 로렌스(Joseph Lawrence), 글렌 스태퍼드(Glen Stafford)가 작곡한 테마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테마들을 늘리고, 조정하고, 협주곡을 만들되 음악적 통일성을 지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이 모든 음악들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같은 오케스트라 팀이 같은 폐교회에서 연주하고 녹음한 것들입니다. 

Q. 오늘 소개된 음악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줄 수 있나요?

데릭: 이 음악은 몇 가지 소리에서 시작됩니다. 벨 소리에서 시작해 던전의 으스스하고 규칙적인 관현악 음악이 되고, 다시 고대의 진언이 됩니다. 그 다음, 음산한 분위기와 함께 또 다른 합창이 더해져 핏빛 수렁을 작업하던 초기(팀 내에서 그냥 ‘늪지’라 부르던 시절)의 음악이 이어집니다. 이런 부분들은 위에서 언급한 ‘숙명’이라는 주제로 이어지는데, 내려가는 4화음을 솔로 바이올린과 오보에의 듀엣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바이올린 솔로는 영혼을 거두는 자의 음악에서 매우 자주 나타나며, 한 영웅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고독하고 위대한 결단을 표현합니다. 성역과 모든 인류를 지키기 위해 필요했던 단 하나의 선택을 상징하죠.